42.[3점]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제42번 문제 자료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77회 한능검 42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7 심화 과정 42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3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5 —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 혁명당을 결성함.”이다.

정답은 ⑤번입니다. 민족혁명당은 1935년 중국 난징에서 김원봉의 의열단을 중심으로 김규식, 조소앙, 지청천 등 다양한 독립운동 단체들이 연합하여 결성한 통합 정당입니다. 따라서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 혁명당을 결성함'은 1930년대 중반 분열된 독립운동 세력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고자 했던 주요 노력 중 하나를 설명하는 것으로, 민족혁명당 결성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의 활동에 대한 올바른 내용입니다. 오답 선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흥사단을 창립한 인물은 안창호입니다. ②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인물은 안중근입니다. ③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한 인물은 박은식입니다. ④ 한국 독립군의 총사령관으로 활약한 인물은 지청천 등으로, 이는 특정 인물의 활동을 지칭하며 민족혁명당 결성의 맥락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적습니다.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