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제77회 한능검 26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7회 심화 과정 26번 문항으로, 조선 후기의 문화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보통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4번 — “규장각 검서관으로 무예도보통지 편찬에 참여하였다.”이다.
정답인 ④번은 조선 후기 정조 대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동하며 『무예도보통지』 편찬에 참여한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 서얼 출신 인물들의 활동을 설명합니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하고 이들을 검서관으로 등용하여 문한 업무와 개혁 정책 추진의 동력으로 삼았으며, 이들은 실학 사상을 바탕으로 다양한 서적 편찬과 학문 연구에 기여했습니다. 오답 선지들을 살펴보면, ①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학파를 형성한 인물은 정제두, ②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한 인물은 정약용입니다. 또한 ③ 추사체를 창안한 인물은 김정희이며, ⑤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며 지부복궐척화의소를 올린 인물은 최익현 등 위정척사파 인사입니다.
시대 배경 — 조선 후기 (임진왜란(1592) ~ 개항(1876) 이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대동법(광해군~숙종), 영정법, 균역법으로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장시·보부상·사상(송상·경강상인·만상·내상)·전국적 유통망이 성장하였다. 농업에서는 모내기법과 견종법이 확산되어 광작이 보편화되고 상품 작물 재배가 늘었다. 사회적으로는 공명첩·납속책으로 신분 이동이 활발해지고 서얼·중인의 통청 운동, 공노비 해방(순조)까지 이어졌다. 정치에서는 붕당 정치의 변질, 숙종의 환국, 영조·정조의 탕평책이 시행되었고 정조는 규장각·초계문신·화성 건설로 개혁을 주도하였다. 사상에서는 실학(이익·정약용·박지원·박제가)과 북학, 서학(천주교), 동학이 등장하였다. 세도 정치(안동 김씨·풍양 조씨)로 삼정의 문란이 심화되어 홍경래의 난,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 대동법·영정법·균역법, 상품 화폐 경제의 성장, 사상(私商) 활동
- 영조·정조의 탕평책, 규장각, 화성 건설
- 실학·북학·서학·동학,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문화 영역 학습 포인트
문화 영역 문제는 사상(유·불·도·실학·서학), 교육 기관, 과학 기술·건축·회화·공예·도자, 문학·금석문·기록문화를 자료 이미지와 함께 제시한다. 유물·유적 이름과 제작 시기를 정확히 연결하는 것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