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실리적 중립 외교 → 인조반정(1623) → 친명배금 → 정묘호란(1627) → 병자호란(1636)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핵심입니다.
⚡ 핵심 흐름: 광해군(중립외교) → 인조반정(1623, 친명배금) → 정묘호란(1627, 형제관계) → 병자호란(1636, 군신관계). 시험에서는 정묘호란(형제)과 병자호란(군신)의 관계 구분, 광해군의 업적(대동법·동의보감)이 빈출됩니다.
광해군의 정책
| 분류 | 내용 |
| 중립 외교 | 명·후금 사이에서 실리 외교: 명의 파병 요청에 강홍립 파견하되 형세를 보아 행동하라 지시 |
| 대동법 | 경기도에 최초 시행(1608), 공납의 폐단 개선(방납 해결) |
| 동의보감 | 허준이 편찬 완성(1610), 의학 백과사전 |
| 전후 복구 | 호적 정리, 토지대장 복구, 양전 사업 |
| 실정 | 영창대군 살해, 인목대비 유폐(폐모살제) → 인조반정의 명분 |
인조반정(1623)과 정묘호란(1627)
| 사건 | 연도 | 내용 |
| 인조반정 | 1623 | 서인 주도, 광해군 폐위 → 능양군(인조) 즉위, 친명배금 정책 전환 |
| 친명배금 | 1623~ | 후금 사신 내쫓고 국서 찢음, 후금을 자극 |
| 정묘호란 | 1627 | 후금(아민) 3만 침입, 형제 관계 맺고 화친(정묘화약) |
병자호란(1636)과 삼전도 굴욕
| 구분 | 내용 |
| 원인 | 후금→청 건국(1636), 군신관계 요구 → 조선 거부 |
| 경과 | 청 태종 12만 대군 침입, 인조 남한산성 피신(47일 항전) |
| 삼전도 항복 | 인조가 삼배구고두례(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 조아림) 수행 |
| 결과 | 군신관계 수용, 소현세자·봉림대군 인질, 명과 단교 |
⚡ 정묘호란=형제관계, 병자호란=군신관계 → 구분 필수
북벌 운동
| 왕 | 내용 | 결과 |
| 효종 | 송시열과 함께 북벌 추진, 군사력 강화(어영청 확대) | 효종 급서(1659)로 무산 |
| 현종~ | 청의 국력 강화로 북벌 자연 소멸 | 나선 정벌(러시아 격퇴, 1654·1658) 참여 |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에 대한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효종은 송시열을 등용하여 군비를 강화했으나, 효종의 갑작스러운 죽음(1659)으로 북벌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청의 국력이 강해지면서 북벌론은 자연히 소멸했습니다.
📌 시험 핵심 키워드
| 키워드 | 핵심 내용 |
| 광해군 | 중립외교, 대동법(경기도), 동의보감, 폐모살제 |
| 인조반정 | 1623, 서인 주도, 친명배금 전환 |
| 정묘호란 | 1627, 후금 침입, 형제관계(정묘화약) |
| 병자호란 | 1636, 청 침입, 남한산성 47일, 삼전도 항복, 군신관계 |
| 삼전도 | 삼배구고두례, 소현세자·봉림대군 인질 |
| 북벌운동 | 효종+송시열, 효종 급서로 무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