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조약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관련 기출
제78회 한능검 28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8회 심화 과정 28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2번 — “일본 측의 해안 측량권을 인정하였다.”이다.
정답은 ②입니다. (가) 조약은 강화도 조약(1876)으로, 이 조약의 제7관은 일본이 조선 해안을 자유롭게 측량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일본의 침략 야욕을 드러내는 불평등 조항이었습니다. ① 천주교 포교 허용은 주로 서양 열강과의 조약(예: 조불수호통상조약)에서 나타납니다. ③ 최혜국 대우 조항은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에서 처음 규정되었습니다. ④ 일본 공사관 경비병 주둔은 임오군란 이후 제물포 조약(1882)에서 명시되었습니다. ⑤ 외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은 강화도 조약 이후 조일통상장정 등을 통해 점차 확대되었습니다.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서구식 근대 국가와 맺은 최초의 불평등 조약으로, 조선의 자주성을 내세우면서도 일본에게 영사재판권 및 해안 측량권 등 침략적 특권을 허용하였습니다.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