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점]

다음 판결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제37번 문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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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회 한능검 37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8 심화 과정 37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사회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3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3 — “전국 단위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었다.”이다.

이 문제에서 제시된 '판결'은 3.1 운동(1919년) 이후 일제가 무단 통치에서 문화 통치로 통치 방식을 전환했던 시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답 ③ 조선 농민 총동맹은 일제의 문화 통치 시기인 1927년에 전국 단위로 결성된 농민 운동 단체로, 이 시기에 활발히 전개된 사회 운동의 흐름에 부합합니다. 오답 선지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정답이 아닙니다. ① 지계아문 설치(1901~1904년)와 ④ 농광 회사 설립(1904년)은 대한제국 시기의 사실입니다. ② 회사령 제정(1910년)과 ⑤ 조선 물산 공진회 개최(1915년)는 일제강점기 초기 무단 통치 시기의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사건은 3.1 운동 이후의 '판결'보다 이전에 일어났으므로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사회 영역 학습 포인트

사회 영역 문제는 신분제(골품·양천·반상), 가족·혼인 풍습, 민란·봉기, 향약·서원 같은 지역 공동체, 여성과 노비의 지위 변화, 일제 강점기 이후의 사회 운동까지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