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점]

밑줄 그은 ‘이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제36번 문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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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회 한능검 36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7 심화 과정 36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보통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4 — “신채호가 쓴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았다.”이다.

제시된 선지와 정답을 통해 ‘이 단체’는 **의열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의열단은 신채호가 작성한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고 요인들을 암살하는 등 직접적이고 과격한 방법으로 독립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① 고종의 강제 퇴위에 반대하는 시위는 1907년경 다양한 애국 계몽 운동 단체나 의병 등이 주도했으며 의열단과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② 조선 총독부에 국권 반환 요구서 제출은 2.8 독립 선언이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과 관련이 깊습니다. ③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한 독립 공채 발행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요 재정 확보 수단이었습니다. ⑤ 신규식을 중심으로 교민들의 단결을 도모한 것은 동제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의 일부로, 의열단과는 다릅니다.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