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점]

밑줄 그은 ‘이 학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제35번 문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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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회 한능검 35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7 심화 과정 35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문화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3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5 — “좌원과 우원을 구분하여 학생을 선발하였다.”이다.

문제의 '이 학교'는 1883년 덕원부 관민의 성금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인 원산학사입니다. 원산학사는 재정 확보와 인재 육성을 위해 좌원(학비를 내는 학생)과 우원(학비 면제 학생)으로 구분하여 학생을 선발한 독특한 운영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① 7재는 고려 시대 국자감의 전문 강좌였고, ③ 교육입국 조서는 원산학사 설립(1883년)보다 늦은 1895년에 반포되었습니다. ④ 대성전과 명륜당은 전통 유학 교육기관의 주요 건물이며, ② 덕원부 관민이 합심하여 만든 것은 맞지만 ⑤번은 원산학사의 독특한 교육 및 재정 운영 방식을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특징입니다.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문화 영역 학습 포인트

문화 영역 문제는 사상(유·불·도·실학·서학), 교육 기관, 과학 기술·건축·회화·공예·도자, 문학·금석문·기록문화를 자료 이미지와 함께 제시한다. 유물·유적 이름과 제작 시기를 정확히 연결하는 것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