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1945) 이후 한반도는 38도선 분할 점령→건준 결성→인공 선포→미군정 수립→좌우 대립이라는 급변기를 맞았습니다. 시험에서는 각 사건의 시간 순서와 핵심 인물, 미군정의 대응을 정확히 구분하는 문제가 자주 출제됩니다.
광복 이전 국제 회담
| 회담 | 시기 | 참가국 | 한국 관련 결정 |
| 카이로 회담 | 1943.11 | 미(루즈벨트)·영(처칠)·중(장제스) | 한국 독립을 '적당한 시기에(in due course)' 보장한다고 최초 명시. 이 표현이 이후 신탁통치 논의의 단초가 됨 |
| 얄타 회담 | 1945.2 | 미·영·소 | 소련의 대일 참전을 합의. 한반도 신탁통치 비공식 논의. 소련 참전은 곧 한반도 분할의 원인이 됨 |
| 포츠담 선언 | 1945.7 | 미·영·중(이후 소련 참가) | 카이로 선언의 이행을 재확인하고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 |
⚡ 카이로(1943) = 독립 '최초' 약속 / 얄타(1945.2) = 소련 참전 합의 / 포츠담(1945.7) = 카이로 재확인
광복 직후 전개 과정
| 시기 | 사건 | 주요 내용 |
| 1945.8.15 | 8·15 광복 | 일본 무조건 항복으로 한반도 해방. 미·소가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기로 합의(미국 제안) |
| 1945.8.15~ | 건국준비위원회(건준) | 여운형(위원장)+안재홍(부위원장)이 좌우합작 형태로 결성. 일제 총독부로부터 치안권 이양받아 전국에 145개 지부 설치. 치안 유지와 건국 준비 활동 수행 |
| 1945.9.6 | 조선인민공화국(인공) 선포 | 건준 내 좌파 세력(박헌영 등)이 우파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정부' 수립을 선언. 안재홍 등 우파가 이탈. 이승만(주석)·여운형(부주석)을 본인 동의 없이 추대하여 정통성에 문제 |
| 1945.9.8 | 미군 진주 | 하지 중장 지휘하에 인천 상륙. 9월 9일 조선총독부에서 항복 조인식 거행 |
| 1945.9~ | 미군정 실시 | 10월 10일 성명으로 조선인민공화국 공식 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정부로 인정하지 않음. 조선총독부 행정 기구를 활용하여 통치, 좌익 세력 탄압 강화 |
| 1945.10 | 이승만 귀국 | 미국에서 귀국,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조직. 반탁·반공 노선으로 우익 진영의 구심점 역할 |
| 1945.11 | 김구·임정 요인 귀국 | 개인 자격으로 귀국(미군정이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한국독립당 중심으로 활동 |
건국준비위원회 vs 조선인민공화국 비교
| 구분 | 건준 | 인공 |
| 성격 | 좌우합작 건국 준비 기구 | 좌파 주도의 '정부' 선포 (일방적) |
| 중심 인물 | 여운형(좌)·안재홍(우) | 여운형·박헌영(좌파 실권) |
| 미군정 태도 | (미군 진주 전 활동) | 공식 불인정·해산 요구 (1945.10.10 성명) |
| 의의 | 광복 직후 자주적 건국 노력의 상징 | 좌우 분열의 시발점 |
📌 시험 핵심 키워드
| 키워드 | 핵심 연결고리 |
| 8·15 광복 | 1945, 일본 항복, 38도선 분할 점령 |
| 건국준비위원회 | 여운형(위원장), 안재홍(부위원장), 좌우합작, 145개 지부 |
| 여운형 | 조선건국동맹(1944) 조직, 건준 위원장, 좌우합작 시도 |
| 조선인민공화국 | 1945.9.6, 좌파 일방 선포, 미군정 공식 불인정 |
| 미군정 | 1945.9~1948.8, 인공·임정 모두 불인정, 직접 통치 |
| 카이로 회담 | 1943, 미·영·중, '적당한 시기에 독립' 최초 약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