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은 지방 중소 지주 출신 성리학자 집단으로, 훈구파에 맞서 성장했습니다. 4차례 사화를 겪은 뒤 선조 대에 정권을 장악하고 붕당 정치가 시작됩니다.
훈구파 vs 사림파 비교
| 구분 | 훈구파 | 사림파 |
|---|---|---|
| 기원 | 세조 즉위(계유정난) 공신 | 정몽주→길재→김종직 학맥 |
| 기반 | 중앙, 대토지·대상업 | 지방 중소 지주, 서원·향약 |
| 학풍 | 부국강병, 사장(문장) 중시 | 도학(성리학) 중시, 왕도정치·의리 |
| 진출 | 과거+음서(공신 특권) | 과거 위주, 3사 언관직(사헌부·사간원·홍문관) 진출 |
| 세력 유지 | 공신 책봉, 중앙 관직 독점 | 서원(교육·여론), 향약(지방 자치) |
사림의 성장과 4대 사화
⚡ 성종 때 김종직 제자들이 중앙에 등용 → 훈구파와 충돌 → 사화 발생
| 사화 | 연도 | 왕 | 원인·내용 |
|---|---|---|---|
| 무오사화 | 1498 | 연산군 | 김종직의 조의제문(세조의 왕위 찬탈 비판) → 제자 김일손 등 처벌 |
| 갑자사화 | 1504 | 연산군 | 어머니 폐비 윤씨 사건 관련자 처벌, 훈구·사림 무차별 탄압 |
| 기묘사화 | 1519 | 중종 | 조광조의 급진 개혁(현량과·소격서 폐지·위훈삭제) → 훈구파 반격으로 실패 |
| 을사사화 | 1545 | 명종 | 외척 간 권력 다툼(대윤 vs 소윤), 사림 피해 |
⚡ 사화에도 불구하고 사림은 서원(사설 교육기관+선현 제사)과 향약(지방 자치 규약)을 기반으로 지방에서 꾸준히 세력을 키워 선조 대에 마침내 중앙 정계를 장악하게 됨. 특히 서원은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1543, 최초의 서원)에서 시작되어 이후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는 사액(임금이 이름을 내림)을 받으면서 전국적으로 확산
조광조의 개혁 정책
| 정책 | 내용 | 목적 |
|---|---|---|
| 현량과 | 추천에 의한 인재 등용 제도 | 사림 세력의 중앙 진출 확대 |
| 소격서 폐지 | 도교 제사 기관 폐지 | 성리학적 합리주의 실현 |
| 위훈삭제 | 중종반정 공신 중 부당한 훈공 삭제 | 훈구파 특권 축소 → 최대 반발 원인 |
| 향약 보급 | 지방 자치 조직 확대 | 사림 기반 강화 |
붕당 정치의 성립
| 구분 | 내용 |
|---|---|
| 계기 | 이조전랑 임명 문제(1575, 선조 8년) |
| 서인 | 심의겸 추종 기성 사림, 기호학파(이이·성혼) |
| 동인 | 김효원 중심 신진 사림, 영남학파(이황·조식) |
| 이조전랑의 중요성 | 정5~6품이지만 후임 추천권(자천권) 보유 → 인사권에 영향 |
| 이후 분화 | 동인 → 남인·북인(1589, 정여립 모반 사건/기축옥사 처리 문제) |
⚡ 붕당 정치 = 상호 비판·견제를 통한 정치 운영으로, 공론(公論, 공적 여론)을 중시하고 3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가 핵심 역할을 수행. 상대 붕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비판을 통해 정치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으나, 후기에는 한 붕당이 독점하는 환국 정치(숙종)·탕평 정치(영조·정조)로 변화
붕당 분화 흐름
| 시기 | 분화 | 계기 |
|---|---|---|
| 1575(선조) | 사림 → 동인·서인 | 이조전랑 임명(심의겸 vs 김효원) |
| 1589(선조) | 동인 → 남인·북인 | 정여립 모반(기축옥사) 처리 문제 |
| 이후 | 서인 → 노론·소론 | 숙종 때 환국 정치 과정에서 |
📌 시험 핵심 키워드
| 키워드 | 핵심 연결고리 |
|---|---|
| 사림 | 정몽주→길재→김종직 학맥, 도학 중시, 서원·향약 기반 |
| 훈구 | 세조 공신 중심, 중앙 기득권, 대토지 소유 |
| 김종직 | 영남 사림의 종조, 조의제문 → 무오사화(1498) |
| 조광조 | 현량과·위훈삭제 등 급진 개혁 → 기묘사화(1519) |
| 이조전랑 | 정5~6품, 후임 추천권(자천권), 붕당 분열 계기 |
| 붕당 | 1575 동인·서인 분당, 공론 중시, 상호 견제 |
| 동인→남인·북인 | 1589 정여립 사건(기축옥사) 처리 문제로 분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