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는 거란·여진·몽골의 외침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별무반은 여진 대응을 위한 특수 부대입니다.
고려의 주요 외침 대응 비교
| 구분 | 거란 (요) | 여진 (금) | 몽골 (원) |
|---|---|---|---|
| 시기 | 993~1019년 (3차 침입) | 1104~1109년 | 1231~1270년 (6차 침입) |
| 대응 | 서희 외교담판 → 강감찬 귀주대첩 | 별무반 편성 → 동북 9성 축조 | 강화도 천도 → 항전 → 개경 환도 |
| 핵심 인물 | 서희, 강감찬 | 윤관 | 김윤후, 삼별초(배중손) |
| 결과 | 강동 6주 획득, 천리장성 축조 | 동북 9성 축조 후 반환 | 굴복·개경환도, 삼별초 항쟁 |
별무반의 편성
윤관은 1104년 여진 정벌에 나섰으나 기병 중심의 여진군에게 패배하였습니다. 이에 숙종에게 건의하여 별무반을 편성했습니다.
| 부대 | 구성 | 역할 |
|---|---|---|
| 신기군 | 기병 | 여진 기병에 대항하는 기마 부대 |
| 신보군 | 보병 | 보병 전투 담당 |
| 항마군 | 승려 | 승려로 구성된 특수 부대 |
동북 9성 축조와 반환
| 구분 | 내용 |
|---|---|
| 정벌 | 1107년 윤관이 17만 대군으로 여진 정벌 → 대승 |
| 축조 | 1108년 개척지에 동북 9성 축조 (영주·웅주·복주·길주 등) |
| 반환 | 1109년 여진의 끈질긴 반환 요청 + 국력 소모로 약 1년 만에 반환 |
| 이후 | 여진이 금(金)을 건국(1115) → 고려에 사대 관계 요구 → 이자겸이 수용 |
천리장성
거란 침입 이후 천리장성을 축조(1033~1044)하여 압록강 하구~동해안 도련포까지 약 천 리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이후 여진족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에도 활용되었습니다.
📌 시험 핵심 키워드
| 키워드 | 핵심 포인트 |
|---|---|
| 별무반 | 윤관 건의, 신기군(기병)·신보군(보병)·항마군(승려) |
| 윤관 | 17만 대군으로 여진 정벌, 동북 9성 축조 |
| 동북 9성 | 1108년 축조, 약 1년 후 여진에 반환 |
| 천리장성 | 1033~1044 축조, 거란·여진 방어용 |
| 강동 6주 | 서희의 담판으로 획득 (거란 1차 침입) |
| 귀주대첩 | 1019년 강감찬, 거란 3차 침입 격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