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려는 노력은 민족 정체성 수호 운동의 핵심이었습니다. 주시경에서 시작된 국어 연구는 조선어학회로 이어졌습니다.
⚡ 국어 연구의 흐름: 주시경(국문연구소) → 조선어연구회(1921) → 조선어학회(1931) → 한글맞춤법통일안(1933) → 조선어학회사건(1942) 순서를 반드시 기억하세요. 시험에서는 연도와 단체명의 매칭이 자주 출제됩니다.
국어 연구 발전 과정
| 연도 | 단체/사건 | 주요 내용 |
|---|---|---|
| 1897 | 지석영 | 국문론 발표, 한글 연구의 선구자 |
| 1907 | 국문연구소 | 학부 설치, 주시경 등 8인 위원, 정서법 통일안 마련 |
| 1908 | 주시경 국어문법 | 근대적 국어 문법 체계 확립, 한글의 과학적 연구 기초 마련 |
| 1921 | 조선어 연구회 | 주시경 제자들이 결성(이윤재, 최현배, 이극로 등) |
| 1926 | 가갸날 제정 | 한글반포 480주년 기념일(음력 9.29) → 훗날 한글날로 발전 |
| 1931 | 조선어학회 | 조선어연구회에서 개칭, 국어 운동의 중심 단체 |
| 1933 | 한글 맞춤법 통일안 | 표음주의+형태주의 절충, 권덕규·이극로·최현배 등 12인 참여, 10.29 공표 |
| 1936 | 표준어 사정 | 「사정한 조선어 표준어 모음」 발표 |
| 1929~ | 조선어사전 편찬 | 조선어학회 주도, 우리말 대사전 편찬 사업 착수 |
조선어학회 사건(1942)
| 구분 | 내용 |
|---|---|
| 배경 |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조선어 교육 폐지, 일본어 상용 강제) |
| 발단 | 함흥 영생여고 학생의 한국어 사용이 발각 → 조선어학회로 수사 확대 |
| 탄압 | 이극로, 최현배, 이윤재, 한징 등 33명 검거, 독립운동 단체로 기소 |
| 결과 | 이윤재·한징 옥사, 조선어사전 원고 압수(해방 후 서울역에서 발견) |
| 의의 | 국어 연구 = 항일 민족운동으로서의 성격 입증 |
⚡ 해방 후 압수된 사전 원고가 발견되어 1957년 우리말 큰사전 완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종래의 표음주의(소리나는 대로 적기)에서 형태주의(어법에 맞도록 적기)를 가미한 절충안으로, 현행 한글 맞춤법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이 통일안을 바탕으로 표준어를 사정하고, 조선어사전 편찬에 착수하여 민족어 보존에 헌신했습니다.
📌 시험 핵심 키워드
| 키워드 | 핵심 내용 |
|---|---|
| 주시경 | 근대 국어학의 아버지, 국문연구소 위원, 국어문법 저술 |
| 조선어학회 | 1931 개칭(←조선어연구회), 맞춤법·표준어·사전 편찬 주도 |
| 한글 맞춤법 통일안 | 1933, 표음+형태주의 절충, 현행 맞춤법의 기초 |
| 조선어사전 | 조선어학회 편찬, 1942 원고 압수 → 해방 후 발견 → 1957 완간 |
| 조선어학회 사건 | 1942, 33명 검거, 이윤재·한징 옥사, 민족말살정책의 일환 |
| 가갸날 | 1926 제정, 한글반포 기념 → 한글날의 기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