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자료가 작성된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관련 기출
제78회 한능검 32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8회 심화 과정 32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3번 — “남접과 북접의 농민군이 논산에 집결하였다.”이다.
주어진 자료는 동학농민운동의 1차 봉기 이후(황토현 전투 승리, 전주 화약, 교정청 설치 등)의 상황을 나타낼 것입니다. 남접과 북접 농민군이 논산에 집결한 것은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이후 동학농민운동의 2차 봉기가 시작된 1894년 10월의 일로, 제시된 선지 중 가장 나중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자료 이후에 전개된 사실은 ③번입니다. ① 황토현 전투 승리(1894년 4월)와 ⑤ 조병갑의 폭정에 항거한 고부 봉기(1894년 1월)는 1차 봉기 당시의 일이며, ④ 교조 신원을 요구하는 삼례 집회는 동학농민운동 발발 이전(1892년)의 일입니다. ②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교정청이 설치된 것(1894년 6월)은 1차 봉기 이후 조선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던 시점의 사건으로, 논산 집결보다 앞서 발생했습니다.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