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왕이 추진한 정책으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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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회 한능검 12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6회 심화 과정 12번 문항으로, 고려 시대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1번 — “지방 세력 통제를 위해 향리제를 정비하였다.”이다.
12목에 경학박사와 의학박사 파견 - 성종 1. 향리제 정비 - 성종 2. 주전도감 해동통보 - 숙종 3. 과거제 - 광종 4. 정계 계백료서 - 태조 왕건 성종 - 전국 12개의 주요 지역(목)에 지방관(경학박사, 의학박사 각 1명)을 파견하고 향리제를 정비했다. -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유교적 정치를 추구했다..(불교행사 억제, 국자감 설치) - 2성 6부의 중앙 정치 체제 마련 5. 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개칭(충선왕) 아래와 같은 오류 신고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의견 부탁 드립니다. 추후 여러분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정답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 다. 참고로 정답 변경은 오류 신고 5회 이상일 경우 수정합니다. [오류 신고 내용] 5.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개칭하고 유학 교육을 강화하였다(공민 왕) [오류신고 반론] 국자감 추가설명 태조때 국학 성종 922 국자감 창설(국학을 개편한것으로 봄) 충렬왕 1275 원나라 간섭으로 국자감을 국학으로 개칭 충선왕 1298 성균'감'(成均監)으로 변경(1298년은 충렬왕 24년 이지만 이해 1월부터 8월까지는 충선왕이 통치하고 있었던 기간 임) 충선왕 1308 충선왕 재집권으로 ''성균관'' 으로 고침 최초는 충 선왕 맞음. 공민왕 1356 배원정책에 따라 다시 국자감이라 하였다가 1362 년 성균관으로 개칭. 이러한 잦은 명칭변경으로 원래 국자감은 유학과 기술학을 교육 하는곳이였는데 성균관은 기술학을 분리시키고 유학만 교육하는 기관으로 변화 하였음. 기술학 분리는 1389년 공양왕.
시대 배경 — 고려 시대 (918년 ~ 1392년)
고려는 태조 왕건이 호족 연합 위에 세운 나라로 훈요 10조, 사심관·기인 제도로 통치 기반을 마련하였고, 광종의 노비안검법·과거제, 성종의 최승로 시무 28조 수용과 2성 6부 체제 정비로 중앙 집권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문종 대에는 문벌 귀족 사회가 전성기를 맞았지만 이자겸의 난·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이후 무신 정변(1170)으로 무신 정권이 수립되고 최씨 무신 정권이 60여 년 지속되었다. 고려는 거란(서희의 외교·강감찬 귀주대첩)과 여진(윤관의 9성), 몽골의 침입(강화 천도·삼별초 항쟁)을 겪었으며, 원 간섭기에 친원파가 등장하였으나 공민왕의 개혁(쌍성총관부 수복, 정방 폐지, 전민변정도감)으로 자주성을 회복하려 하였다. 문화적으로는 팔만대장경, 직지, 고려청자, 의천·지눌의 불교 통합이 대표적이며, 경제에서는 전시과·개경의 시전·벽란도의 국제 무역이 중요하다.
- 태조 왕건의 호족 정책, 광종의 과거제, 성종의 시무 28조
- 무신 정변, 최씨 무신 정권, 삼별초 항쟁
-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 전민변정도감, 신진 사대부의 성장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