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개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제44회 한능검 32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4회 심화 과정 32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3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5번 — “ㄷ, ㄹ”이다.
여기서 조선인 망명자 살해 사건이라 함은 김옥균이 암살된 사 건을 말합니다. 김옥균은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갑신정변을 일으키는데요, 개혁 내용 중 국가 재정을 호조로 일원화하는 내용이 있었습니 다. 하지만 갑신정변은 청나라의 군사 개입으로 3일천하로 끝나고 맙니다. 답이 다 나왔네요. (ㄱ):집강소는 동학농민운동 시기에 설치된 기구입니다. (ㄴ):농민들이 그렇게 원했던 토지개혁은 어떤 개혁에서도 실시 되지 않았습니다. (ㄷ),(ㄹ):정확히 맞습니다. 동학농민운동때 신분제 폐지와 더불어 토지균분과 과부의 재가 를 요구했습니다. 전주화약에서 소윤권 균분이 경작권의 균분으로 하향조정되었습 니다. [추가 해설] 내용 중 민중들이 개혁에 적대감을 가졌다고 되어있음 -> 일본 의 지원에 의존, 민중의 지지를 받지못함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