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제41회 한능검 42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1회 심화 과정 42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4번 —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군사 조직이었다.”이다.
김원봉이 주도하고 중국 국민당 부대지원을 받았다는데서 조선 의용대(1938)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의용대는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이 며 정보 수집과 선전, 후방 교란 활동의 임무를 하였습니다. 조선 의용대는 훗날 한국 광복군에 편입되고, 일부는 화북지대 를 결성하므로 기억해야합니다. 1. 대한독립군단 2. 한국독립군 3. 조선혁명군 4. 조선의용대 5. 대한독립군 김원봉이 조직했던 단체 : 의열단(1919) -> 조선 의용대 1. 간도 참변(1920) 이후 자유시 이동 : 대한 독립군단 2. 한국 독립당 산하 부대 : 한국 독립군 3. 중국군과 연합 작전으로 항일 전쟁 : 조선 혁명군. 영릉가, 흥경성 전투 4.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군사 조직 : 조선 의용대 5. 봉오동 전투 : 대한 독립군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