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점]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제33번 문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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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회 한능검 33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1 심화 과정 33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5 — “보국안민을 기치로 우금치에서 일본군 및 관군과 맞서 싸웠다.”이다.

동학농민운동은 1차 2차에 걸쳐 일어났다 1차는 반봉건적인 성향이 강하고 2차는 반외세적인 성격이 강하 다 문제에서 다시 일어나 일본군에게... 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2차동학농민운동이다 [추가 해설] 동.농운동으로 청나라에 군대요청 → 톈진조약으로 일본군대도 조선에 들어옴 → 일본군이 경복궁 점령 → 개빡친 농민들 2차 동.농운동(위처럼 반외세) 재차 기포한 것을 일본 군사가, 궁궐을 침범한 연유~ : 동학 농 민 운동 1. 을사늑약 반대 : 을사의병(1905~1906), 최익현, 신돌석 등이 의병 이끌었음 2. 독립협회 : 서재필이 정부 지원 받아 독립신문 창간, 독립협 회 창립(1896.7). 독립문 건립. 3. 왜양일체론 : 최익현, 일본에게 개방 반대 4. 13도 창의군 : 이인영 창의대장, 허위 군사장 (1908년) 5. 보국안면, 우금치 : 동학농민운동 (가) 인물은 전봉준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동학농민운동은 톈진조약 체결의 배경이 아님, 톈진,한성조약은 갑신정변이 배경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