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국문 교서'가 발표된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제41회 한능검 23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1회 심화 과정 23번 문항으로, 조선 후기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1번 — “이순신이 명량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하였다.”이다.
사례에서 제시한 '국왕의 의주 파천' 즉 왕이 의주로 피난 간 상 황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초기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 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부산포로 침입하여 파죽지세로 몰고 올라 오는데 당시 조선은 군사편제를 제승방략체제를 선택하고있었 다..제승방략체제는 많은 적이 침입해올 때는 나름의 효과가 있 을 지 모르겠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바로 주변 지역에 있는 사람 들도 한 곳에 집결시켜 전투를 하기 때문에 한번 싸움에서지면 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군사가 없어 파죽지세로 점령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선도 이 단점을 피해가지는 못했고 일본은 결국 왕이 있는 한 양까지 밀고 오니 평양성으로 피신을 갔다가 평양성까지도 밀고 들어오니 평양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 갈 수밖에 없었다. 사례는 지금 설명한 상황의 이후의 모습을 찾으라는 것이다. 선지의 해설 1. 이순신이 명량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하였다..- 임진왜란이후 정유재란까지 일으키고 난 뒤 그 이름도 유명한 이순신의 명량 대첩과 노량대첩이 바로 임진왜란 이후에 발생한 일이다. 2. 신립이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항전하였다..- 이 시기 는 일본이 부산포로 진입하여 부산포전투를 이기고 밀고 들어온 2차 방어선(?)과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충주 전투의 설명 이라고 볼 수 있다..이 충주전투에서 패배를 하면서 일본은 한양 을 점령하게 되는데 이 시기는 왕이 의주로 피난가기는 전이기 때문에 답이 될 수 없다. 3. 이종무의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이종무 의 쓰시마섬 정벌은 세종때의 일이다. 4. 계해약조가 체결되어 세견선의 입항이 허가되었다..- 계해약 조를 체결한 시기 또한 세종때의 일이다. 5. 조선 정부의 통제에 반발한 3포 왜란이 일어났다..- 3포 왜 란은 중종때의 일이다.
시대 배경 — 조선 후기 (임진왜란(1592) ~ 개항(1876) 이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대동법(광해군~숙종), 영정법, 균역법으로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장시·보부상·사상(송상·경강상인·만상·내상)·전국적 유통망이 성장하였다. 농업에서는 모내기법과 견종법이 확산되어 광작이 보편화되고 상품 작물 재배가 늘었다. 사회적으로는 공명첩·납속책으로 신분 이동이 활발해지고 서얼·중인의 통청 운동, 공노비 해방(순조)까지 이어졌다. 정치에서는 붕당 정치의 변질, 숙종의 환국, 영조·정조의 탕평책이 시행되었고 정조는 규장각·초계문신·화성 건설로 개혁을 주도하였다. 사상에서는 실학(이익·정약용·박지원·박제가)과 북학, 서학(천주교), 동학이 등장하였다. 세도 정치(안동 김씨·풍양 조씨)로 삼정의 문란이 심화되어 홍경래의 난,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 대동법·영정법·균역법, 상품 화폐 경제의 성장, 사상(私商) 활동
- 영조·정조의 탕평책, 규장각, 화성 건설
- 실학·북학·서학·동학,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