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점]

밑줄 그은 ‘중건’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제29번 문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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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회 한능검 29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6 심화 과정 29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보통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5 — “한성근 부대가 문수산성에서 항전하였다.”이다.

문제에서 밑줄 그은 ‘중건’은 흥선대원군이 추진한 경복궁 중건(1865~1872)을 의미합니다. 경복궁 중건이 한창이던 1866년에 병인양요가 발생했으며, 이때 한성근 부대가 프랑스군에 맞서 문수산성에서 항전하였습니다. 따라서 ⑤번이 정답입니다. ① 청일 전쟁은 1894년, ③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것은 1885년으로, 모두 경복궁 중건 이후의 일입니다. ② 삼정이정청은 임술농민봉기(1862) 이후에 설치되었고, ④ 김기수가 수신사로 파견된 것은 강화도 조약(1876) 이후의 일입니다.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