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점]

밑줄 그은 '장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제35번 문제 자료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53회 한능검 35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53 심화 과정 35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3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2 — “방곡령 시행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였다.”이다.

-조일통상장정(1883)- 전 42조에 걸친 이 장정의 중요 내용은 ① 아편수입 금지(제31관) ② 천재·변란으로 인한 식량 부족의 우려가 있을 때의 방곡령(防 穀令)의 선포(제37관) ③ 관세 및 벌금의 조선 화폐에 의한 납입(제40관) ④ 일본 상민에 대한 최혜국 대우(제42관) ⑤ 장정의 5년간 유효(제42관) 등 갑신정변의 영향으로 체결 - 톈진조약, 한성조약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이 주둔하는 계기 - 임오군란으로 일어난 제물포조약 일본인 재정 고문을 두도록 하는 조항 - 러일전쟁 이후 1차 한 일협약 부산 외 2개 항구를 개항한다는 내용을 포함 - 강화도조약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