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제51회 한능검 33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51회 심화 과정 33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의 사회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보통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3번 — “일본이 군대를 동원하여 경복궁을 점령하였다.”이다.
동학농민운동 중에 1차, 2차가 있는데 1차 봉기 마무리인 전주 화약 ~ 2차 봉기 남북접 연합 시기를 의미함 이 사이에는 앞서 갑신정변으로 인해 체결된 톈진조약으로 인해 일본도 청 따라 한국에 개입하였는데, 경복궁을 침입한 사건이 발생함 동학농민운동 1차(반봉건) 고부 봉기 → 백산 봉기 → 황토현, 황룡촌 전투 승리 → 전주 성 점령 → 위기를 느낀 정부가 청에 help 요청 → 청이 개입 → 일본도 톈진조약을 빌미로 청 따라 개입(일본은 경복궁 점령) → 어..? 이게 아닌데 싶은 정부가 농민과 협상하여 전주화약을 맺음(정부 : 님들 일단 외세들 보내는 게 우선일거 같음. 우리 일단 협력해서 외세 몰아내고 해결하자 ㄱㄱ 농민들 : ㅇㅋ) 2차(반외세) 청일이 쌍으로 난리치니까 일단 쟤네들 몰아내야지 이러면서 반 외세적 성격으로 변함. 먼저 남북점 연합이 동맹 → 우금치 전 투 → but 실패 1. 1차 동학농민운동 고부 봉기 → 백산 봉기 시절을 말함. 이 전 2. 2차 동학농민운동 남북접 연합 후 우금치 전투. 이후 4. 동학농민운동 발생 배경. 이전 5. 1차 동학농민운동. 이전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사회 영역 학습 포인트
사회 영역 문제는 신분제(골품·양천·반상), 가족·혼인 풍습, 민란·봉기, 향약·서원 같은 지역 공동체, 여성과 노비의 지위 변화, 일제 강점기 이후의 사회 운동까지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