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점]

(가)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제38번 문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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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회 한능검 38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61 심화 과정 38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2 — “공화정체의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이다.

박상진의사=>대한광복회(공화정 지향) [대한광복회] - 1910년대 저항 - 박상진 등이 중심이 되어 의병 활동과 애국 계몽 운동에 참여 하였던 두 세력이 모여 대구에서 조직한 비밀 결사. 이들은 공화정 수립을 지향 하였으며,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군자금 모집에 주력하여 마련된 자금으로 만주에 무관 학교를 설립하려고 하였다. 1. 고종의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을 전개 └ 대한 자광회(1906) -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즉각적 인 무력 행사로 대항하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국권 회복을 위한 실력 양성 주장. 1) 입헌 군주제를 지지 2) 전국에 지회를 소유 3) 월보 간행 4) 고종 퇴위 반대 -> 당시 만들어진 '보안법' 에 의해 해체 2. 공화정체의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삼았다..-> 대한 광복 회 3.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 하였다.. └ 신한청년당 (1910년대 저항) - 파리 강화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을 주장 하였다. 1) 3.1 운동을 전후하여 상하이로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신한 청년당을 중심으로 독립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 4. 미군과 연합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 └ 한국광복군 (1940) 1) 총사령관 지청천 2) 김원봉의 조선의용대 흡수/통합 (1942) 3) 대일/대독 선전포고문 발표 4)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 활동 5) 국내 진공 작전 : 미국부대 (oss) 와 연합 -> 일본 항복으 로 실패 5. 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여 민권 신장을 추구 하였다 └ 독립협회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