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나) 문서가 작성된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제50회 한능검 27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50회 심화 과정 27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보통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1번 — “김기수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이다.
(가) 강화도 조약 전 최익현이 올린 왜양일체론이다. (나) 조선침략에 반대하며 이만선 올린 영남 만인소로 개화정책 반대이다. 강화도 조약은 1876년 2월 27일에 체결되었고 김기수는 수신사 로 2월22일에 임명되고 그 해 4월 29일에 일본으로 출발했습니 다..김기수는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러 간것이 아니고 일본의 발전 상 및 세계정세 파악의 목적으로 간것입니다. 참고: 최익현 왜양일체론 1870년대, 영남 만인소 이만손의 개화 반대운동 1880년대 1번보기:1876년 2번보기:1885~1887년 3번보기:1866년 4번보기:1882년 5번보기:1866년 따라서 70년과 80년 사이에 있는 1번이 정답입니다 영남만인소는 서양세력과 조약을 반대함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한 것은 조러수호통상조약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방지하기 위함 따라서 영남만인소 이후 가. 왜양일체론으로 강화도조약 반대 강화도조약 체결 전 나. 황준헌 => 조선책략 저술 2차 수신사 간 김홍집이 가져옴 그러니 사이에 사건은 1차 수신사 김기수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