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점]

다음 가상 대화 이후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고른 것은?

제31번 문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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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회 한능검 31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7 심화 과정 31번 문항으로, 근대 (개항기~대한제국)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5 — “ㄷ, ㄹ”이다.

방러->연미는 황쭌쉔의 조선책략에 대한 내용이다. ㄱ.운요호사건은 조선책략 전 ㄴ.척화비는 신미양요 후 흥선대원군이 세운 비이다. ㄷ.이만손의 영남만인소는 조선책략 유포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 다 ㄹ.조선책략 유포계기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추가 해설] 신미양요 1871 -> [[ㄴ]].대원군 척화비 건립.(대원군은 척화, 어느나라든 전부 수교 거부) 최익현 탄핵상소 -> 대원군 실각 고종 친정.(고종은 문호 개방 에 관심이 있었음)----> 1875 5월 [[ㄱ]].운요호 사건.->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 1876) 강화도 조약 이후 통신사-->>수신사로 이름 변경. 1차 수신사 1876 2차 수신사 1880 1880 김홍집이 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가서 [[보기]]조선책략을 황준헌(황준센)에게 받음. 김홍집은 고종에게 경과보고하는 자리에서 조선책략 + 다른 신 서들을 바침. 쇄국 보수 척사사상에 젖은 유림측은 맹렬한 반대상소를 올렸 고, 그중 하나가 영남 유생 [[ㄷ]]. 이만손의 영남만인소 그 내용이 너무 과격하여 이만손은 참형당함 강화도 조약 내용을 들은 1878년 상원의원 서전트가 미국에서 조선개항 필요성 어필. (대 아시아 무역팽창 + 러시아 남하정책 저지 + 조선 개화운동 도움) 1880년 슈펠트는 일본 이노우에 소개장을 가지고 부산을 방문 하여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일본의 중재에 의한 교섭은 할수 없다고 반대당함. 이 소식을 들은 청나라 이홍장은 슈펠트를 톈진으로 초청. 당시 조청은 조공관계 --> 청나라의 거중조정을 이용하여 조선 개항 실현가능성을 설파. 이홍장은 북으로는 러시아 남침 남으로는 일본의 침략을 저지하 기위해 연미론(미국과연합)을 제창. 당시 조선은 개화파 vs 척화파의 대립이 심해 대청교섭을 비밀 외교로 추진하였다. 영선사 김윤식은 이홍장을 만나 조미수호통상조약 교섭의 [[전 권]]을 이홍장에게 위임. 속국조항도 인정. 그렇게 하여 1882년 제물포 화도진에서 전권대신 신헌 부대신 김홍집과 미국 전권공사 슈펠트 사이에서 [[ㄹ]]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32. 다음 답사가 이루어진 지역을 지도에서 옳게 찾은 것은? [1 점] ① (가) ② (나) ③ (다) ④ (라) ⑤ (마)

시대 배경 — 근대 (개항기~대한제국) (1876년 강화도 조약 ~ 1910년 국권 피탈)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조선은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운동(1894), 갑오·을미개혁, 아관파천을 거치며 근대화와 열강의 각축 속에 놓였다. 독립협회가 자주 국권·자유 민권·자강 개혁을 주장하며 만민공동회를 열었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광무개혁(구본신참)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1904~1905)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을사늑약(1905), 헤이그 특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1907), 기유각서를 거쳐 1910년 국권이 강탈되었다. 의병 전쟁(을미·을사·정미 의병), 애국 계몽 운동(신민회·대한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신식 학교와 언론(독립신문·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이 이 시기 저항과 근대화의 두 축이었다.

  •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 농민 운동, 갑오·을미개혁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대한제국 광무개혁
  • 을사늑약, 신민회, 의병 전쟁, 국채 보상 운동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