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점]

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제27번 문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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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회 한능검 27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3 심화 과정 27번 문항으로, 조선 후기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보통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2 —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의 무역을 재개하였다.”이다.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거임 말에서 신문고, 청계천 힌트로 영조임을 알수 있지만 모르겠으면 보기를 통해 왕을 추측한다 1 속대전 영조 2 기유약조 광해군 3 동국문헌비고 영조 4균역법 영조 5 탕평비 영조 2번만 광해군 보기. 청계천.신문고 -> 영조. 1,3,4,5중 하나만 몰라도 2번 기유약조와 햇갈리셨을탠데 기유약조가 일본과 맺은 조약인것만 알면 됩니다. 조선 근대 전에 일본과 맺은 대부분의 조약이 임진왜란 정유재 란과 근접하다는 사실과, 영조가 병자호란도 한참 지나 근대로 가기 직전 조선후기 왕이 라는 사실을 생각하시면 일본과의 조약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시고 문제를 푸시면 쉽게 해결됩니다.

시대 배경 — 조선 후기 (임진왜란(1592) ~ 개항(1876) 이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대동법(광해군~숙종), 영정법, 균역법으로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장시·보부상·사상(송상·경강상인·만상·내상)·전국적 유통망이 성장하였다. 농업에서는 모내기법과 견종법이 확산되어 광작이 보편화되고 상품 작물 재배가 늘었다. 사회적으로는 공명첩·납속책으로 신분 이동이 활발해지고 서얼·중인의 통청 운동, 공노비 해방(순조)까지 이어졌다. 정치에서는 붕당 정치의 변질, 숙종의 환국, 영조·정조의 탕평책이 시행되었고 정조는 규장각·초계문신·화성 건설로 개혁을 주도하였다. 사상에서는 실학(이익·정약용·박지원·박제가)과 북학, 서학(천주교), 동학이 등장하였다. 세도 정치(안동 김씨·풍양 조씨)로 삼정의 문란이 심화되어 홍경래의 난,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 대동법·영정법·균역법, 상품 화폐 경제의 성장, 사상(私商) 활동
  • 영조·정조의 탕평책, 규장각, 화성 건설
  • 실학·북학·서학·동학,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