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점]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제13번 문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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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회 한능검 13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3 심화 과정 13번 문항으로, 고려 시대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3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3 — “이자겸이 금의 사대 요구 수용을 주장하였다.”이다.

여진(금) 12세기이다..이때 윤관은 별무반을 창설하여 신기군, 신보, 항마로 구성하였었다..동복9성을 여진(금)에게 내 주었고 이후로 이자겸. 김부식이 금의 사대요구 수용을 주장하는 개경 파와 묘청과 정지상의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서경파로 나누어 진 다..결국 서경파의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은 실패로 끝이나게 된 다. 1. 강감찬의 귀주대첩 → 거란(요)의 3차침입 2. 강조가 장변을 일으킴 → 1009년(고려 목종 12) 강조가 목종 을 시해하고 일으킨 정변.(네이버 백과사전) 4. 서희의 외교담판, 강동 6주 → 거란(요)의 1차 침입 5. 천리장성 축조(부여성~비사성) → 고구려 연개소문 천리장성 축조(압록강흥화진~동해안의 도련포) → 1033년 고려시대 거란과 여진의 침략 대비 강조의정변-거란 2차침입의 계기가 됨 키워드는 여진이 고려에게 동북9성을 달라고 징징대는 내용이다 고려와 여진은 고려 숙종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여진이 계속 고려를 껄덕댔는데 고려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대충 막으니까 이것들이 한번 크게 공격하고 정주성에서 고려가 패배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따라서 여진에 대항하기 위하여 신기 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이루어진 별무반을 윤관의 건의에 의해 편성하였고 1107년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러 갑니다..이때 뺏은 땅이 바로 동북 9성 이 땅이 고려땅이다 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민정책도 펼치 는데 관리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따라서 징징대는 여진한테 돌려주기로 하는데 이것들이 이젠 간이 튀어나와서 금이 되어 옵니다..아골타가 부족을 통일하여 금을 건국하고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는걸 이자겸이 수용합니다.

시대 배경 — 고려 시대 (918년 ~ 1392년)

고려는 태조 왕건이 호족 연합 위에 세운 나라로 훈요 10조, 사심관·기인 제도로 통치 기반을 마련하였고, 광종의 노비안검법·과거제, 성종의 최승로 시무 28조 수용과 2성 6부 체제 정비로 중앙 집권 국가로 발돋움하였다. 문종 대에는 문벌 귀족 사회가 전성기를 맞았지만 이자겸의 난·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이후 무신 정변(1170)으로 무신 정권이 수립되고 최씨 무신 정권이 60여 년 지속되었다. 고려는 거란(서희의 외교·강감찬 귀주대첩)과 여진(윤관의 9성), 몽골의 침입(강화 천도·삼별초 항쟁)을 겪었으며, 원 간섭기에 친원파가 등장하였으나 공민왕의 개혁(쌍성총관부 수복, 정방 폐지, 전민변정도감)으로 자주성을 회복하려 하였다. 문화적으로는 팔만대장경, 직지, 고려청자, 의천·지눌의 불교 통합이 대표적이며, 경제에서는 전시과·개경의 시전·벽란도의 국제 무역이 중요하다.

  • 태조 왕건의 호족 정책, 광종의 과거제, 성종의 시무 28조
  • 무신 정변, 최씨 무신 정권, 삼별초 항쟁
  •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 전민변정도감, 신진 사대부의 성장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