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이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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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한능검 22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8회 심화 과정 22번 문항으로, 조선 후기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3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3번 — “김준룡이 근왕병을 이끌고 광교산에서 항전하였다.”이다.
이 전쟁은 병자호란이다. 1.이괄은 인조반정 2.임진왜란 4.병자호란 이전 5.임진왜란 1623 인조반정 : 광해군 폐위, 인조 즉위 1624(인조 2) 이괄의 난 : 이괄이 난을 일으켜 한양 함락, 인조 가 공산성으로 피란 1627(인조 5) 정묘호란 : 후금(청)이 조선을 침공 1636(인조 14) 병자호란 : 청이 조선을 재침 1637(인조 16) 소현세자가 청나라 수도 성경(선양)으로 끌려감, 약 9년 동안 청나라에 억류 1645(인조 23) 음력 2월 : 소현세자 귀국 1645(인조 23) 음력 4월 26일 : 소현세자 사망 - 병자호란(1637) 전투 목록(양력) 01.08~01.19 : 동선령 전투(김자점, 이완, 승리) 01.09~01.24 : 남한산성 공방전 01.11~01.18 : 검단산 전투(조정호, 권정길, 패배) 01.19~01.21 : 토산 전투(이배원, 이석달) 01.21 : 험천 전투(충청도 근왕군, 패배, 정세규 퇴각) 01.23~01.28 : 철옹성 전투(신경원) 01.26 : 쌍령 전투(패배, 인조의 청나라 항복 계기 중 하나) 01.28~01.31 광교산 전투(전라도 근왕군, 승리) 02.15~02.16 : 강화부 방어전(패배) 02.20~02.23 : 김화 전투(평안도 근왕군) 02.24 : 인조 항복, 삼전도(서울 송파)의 굴욕(=정축하성) 소현 세자 - 인조의 맏아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감, 조선과 청나라 사이 외교관 역할 - <조선왕조실록>에는 소현세자가 병이 갑자기 악화되어 죽었 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진원군 이세완의 아내가 염습에 참여하고 나와서 '시신이 온통 검은 빛이었고 이목구비에서 모두 피를 흘리고 있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것 같았다'는 증언을 남겼다 봉림대군 : 인조의 둘째 아들, 효종 이괄 : 인조반정 참여 -> 반정 후, 평안도에 주둔(후금의 침입 대비) -> 이괄의 난(논공행상의 불만으로) -> 관군에게 진압되며 실패 ( 후에 그 잔려세력들은 후금으로 건너가 정묘호란 때 후금 군대와 함께 남하하기도 함.) 4. 임시기구로 비변사가 처음 설치된 때는 3포왜란(중종) 을묘왜변(명종)때 상설기구로 바뀌고 임진왜란 때 비변사 역할 커짐
시대 배경 — 조선 후기 (임진왜란(1592) ~ 개항(1876) 이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대동법(광해군~숙종), 영정법, 균역법으로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장시·보부상·사상(송상·경강상인·만상·내상)·전국적 유통망이 성장하였다. 농업에서는 모내기법과 견종법이 확산되어 광작이 보편화되고 상품 작물 재배가 늘었다. 사회적으로는 공명첩·납속책으로 신분 이동이 활발해지고 서얼·중인의 통청 운동, 공노비 해방(순조)까지 이어졌다. 정치에서는 붕당 정치의 변질, 숙종의 환국, 영조·정조의 탕평책이 시행되었고 정조는 규장각·초계문신·화성 건설로 개혁을 주도하였다. 사상에서는 실학(이익·정약용·박지원·박제가)과 북학, 서학(천주교), 동학이 등장하였다. 세도 정치(안동 김씨·풍양 조씨)로 삼정의 문란이 심화되어 홍경래의 난,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 대동법·영정법·균역법, 상품 화폐 경제의 성장, 사상(私商) 활동
- 영조·정조의 탕평책, 규장각, 화성 건설
- 실학·북학·서학·동학,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