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이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제48회 한능검 8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8회 심화 과정 8번 문항으로,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발해)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2점, 난이도는 보통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1번 — “중정대를 두어 관리를 감찰하였다.”이다.
목간에 적힌 '고려'명칭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증거 1.중정대-발해의 감찰기구 나머지 오답은 모두 신라에 관한 내용 2.법흥왕 3.신문왕 4.법흥왕 5.문무왕 발해(698~926) - 발해는 신라 견제를 위해 일본과 우호 관계 유지 - 일본에 국서를 보내고 고구려와 부여 계승을 표방(문왕) 발해 문왕(737~793) 일본에 보낸 국서와 일본에서 발해에 보낸 국서에서도 고구려왕 (고려 국왕)이라는 명칭 사용. 당시에 고구려를 고려라고도 함. 1. 중정대 : 발해의 관리들의 비리 감찰기구 2. 건원 : 신라 법흥왕(6세기 전반)때의 연호. 발해의 연호 : 천 통(대조영), 인안(무왕), 대흥(문왕), 건흥(선왕) 등 3. 9서당 10정 : 통일신라 신문왕(681~692) 때의 군사조직 개 편 4. 골품제 : 법흥왕 7년(520)에 반포된 신라시대의 신분제도 5. 상수리 제도 : 통일 신라시대 지방세력 통제 목적의 제도(시 기 불명확)
시대 배경 — 남북국 시대 (통일 신라·발해) (676년 ~ 926년)
삼국 통일 후 신라는 중대(태종무열왕~혜공왕)에 전제 왕권을 강화하여 집사부 중심의 중앙 집권, 9주 5소경의 지방 제도, 9서당 10정의 군사 제도를 정비하고 녹읍 폐지·관료전 지급으로 귀족 세력을 견제하였다. 하대로 넘어오며 왕위 쟁탈전, 호족의 성장, 6두품의 개혁 요구(최치원 등), 선종의 유행, 농민 봉기(원종·애노의 난)로 체제가 붕괴되어 후삼국 시대로 이어졌다. 한편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698년 동모산에서 건국한 발해는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큼 번성하였고, 고구려 계승 의식을 바탕으로 당의 제도를 수용해 3성 6부를 두고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운영하였다. 문화적으로 석굴암·불국사, 신라 금석문, 고분과 범종, 이불병좌상 같은 발해 유물이 남아 있다.
- 통일 신라: 신문왕의 녹읍 폐지·관료전, 9주 5소경, 국학, 독서삼품과
- 발해: 대조영 건국, 무왕·문왕·선왕의 발전, 고구려 계승 의식, 해동성국
- 6두품 지식인(최치원·최승우·최언위), 선종과 풍수지리설의 유행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