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점]

다음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제26번 문제 자료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45회 한능검 26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45 심화 과정 26번 문항으로, 조선 후기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3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5 — “인현 왕후가 폐위되고 희빈 장씨가 왕비로 책봉되었다.”이다.

장희빈이 아들을 낳자 숙종이 원자로 책봉하려고 하였으나 송시열(노론)이 반대하였다. 이에 송시열은 사사되고 장희빈 세력인 남인이 정계를 주도하게 된다. 기사환국(1689년, 숙종 15) - 숙종이 민유중(노론계)의 딸(인현 왕후)을 계비로 맞았다. - 인현왕후가 원자를 낳지 못하고, 숙종이 총애하던 후궁 장희 빈이 아들을 낳자, 숙종은 이듬해 그 아들을 원자로 삼아 정호 하고자 했다. -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은 이를 반대하였다. - 이 문제를 계기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 인현 왕후가 폐위되고 희빈 장씨가 왕비로 책봉되었다. 1. 이괄의 난은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이괄이 일으킨 난이 다..(1624년, 인조 2) 2. 기축옥사는 기축년, 1598년(선조 22)에 일어났다..서인이 정 국을 주도하게 됐다. 3. 서인이 남인을 역모로 몰아 경신환국(1680년, 숙종 6)때 허 적, 윤휴 등 남인이 대거 축출 되었다. 4. 1591년(선조 24) 정철이 건저의(세자 책봉에 관한 건의)를 올리면서 선조의 미움을 받아 서인, 남인이 외직으로 몰리고 북 인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5. 기사환국 2. 기축옥사는 1598년이 아니라 1589년 선조 22 사건순서 2 - 4 - 1 - 3 - 5 임금이 말하기를, 송시열이 산림(山林)의 영수로서 나라의 형세 가 험난한 때에 감히 원자의 명호를 정한 것이 너무 이르다고 하 였다는 이유로 삭탈관작하고 성문 밖으로 내쳐라'는 내용이 나 와 있다..이어 '송시열을 구하려는 자는 비록 대신이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왕이 말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이를 통해 제 시된 상황은 세자 책봉 문제로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이 축출당 한 기사환국 때임을 알 수 있다(1689, 숙종 15). 이 직후 인현 왕 후 (1667~1701)가 폐위되고 희빈 장씨(1659~1701)가 왕비로 책봉 되 었다(남인 집권). ① 공신 책봉 문제로 이괄의 난이 일어난 것은 인조 2년인 1624년이다. ②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발생한 것은 선조 22년 인 1589년이다. ③ 허적과 윤휴 등 남인들이 대거 축출된 것은 경신환국 때의 일 이다(1680, 숙종 6). ④ 북인이 서인과 남인을 배제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은 광해군 대(재위 1608-1623)의 일이다

시대 배경 — 조선 후기 (임진왜란(1592) ~ 개항(1876) 이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대동법(광해군~숙종), 영정법, 균역법으로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상품 화폐 경제의 발달로 장시·보부상·사상(송상·경강상인·만상·내상)·전국적 유통망이 성장하였다. 농업에서는 모내기법과 견종법이 확산되어 광작이 보편화되고 상품 작물 재배가 늘었다. 사회적으로는 공명첩·납속책으로 신분 이동이 활발해지고 서얼·중인의 통청 운동, 공노비 해방(순조)까지 이어졌다. 정치에서는 붕당 정치의 변질, 숙종의 환국, 영조·정조의 탕평책이 시행되었고 정조는 규장각·초계문신·화성 건설로 개혁을 주도하였다. 사상에서는 실학(이익·정약용·박지원·박제가)과 북학, 서학(천주교), 동학이 등장하였다. 세도 정치(안동 김씨·풍양 조씨)로 삼정의 문란이 심화되어 홍경래의 난,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 대동법·영정법·균역법, 상품 화폐 경제의 성장, 사상(私商) 활동
  • 영조·정조의 탕평책, 규장각, 화성 건설
  • 실학·북학·서학·동학,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