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통일 - 후삼국 통일 — 왕건의 17년 전쟁, 936년 통일까지의 모든 과정
고려9분 읽기2026-06-05

후삼국 통일 — 왕건의 17년 전쟁, 936년 통일까지의 모든 과정

918년 고려 건국부터 936년 후삼국 통일까지 17년. 왕건이 후백제 견훤·신검과, 신라 경순왕과 어떻게 맞서고 협력했는지, 공산 전투부터 일리천 전투까지 후삼국 통일의 모든 과정을 시대순으로 정리합니다.

918년 6월,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새 왕조 고려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때 한반도는 셋으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고려(왕건), 후백제(견훤), 신라(경애왕). 셋이 다투는 후삼국 시대가 본격 시작된 것입니다. 17년 후인 936년, 왕건이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했습니다. 공산 전투의 대패에서 일리천 전투의 대승까지, 견훤의 망명에서 경순왕의 자발적 항복까지 —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을 시대순으로 정리합니다.

후삼국 시대의 시작

신라 말기의 혼란

9세기 말 신라는 진성여왕 시기 농민 봉기(889 사벌주 원종·애노)가 폭발하면서 통제력을 잃었습니다. 호족들이 각지에서 자립하기 시작했고, 이 중 두 사람이 새 나라를 세웠습니다.

후백제 (900) — 견훤

신라 군인 출신 견훤(甄萱)이 900년 완산주(전주)에서 후백제를 건국했습니다. 백제의 부활을 표방하며 전라도·충청도 일대를 차지했습니다.

후고구려 (901) → 마진 → 태봉 — 궁예

901년 궁예(弓裔)가 송악(개성)에서 후고구려를 건국했습니다. 904년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911년 다시 태봉(泰封)으로 바꿨습니다. 궁예는 강원도·경기·황해도 일대를 차지했지만, 후기에 미륵불을 자처하고 폭정을 하다가 신하들의 신망을 잃었습니다.

고려 건국 (918.6) — 왕건

918년 6월, 궁예의 부장이었던 왕건이 다른 신하들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새 왕조 고려(高麗)를 건국했습니다. 수도는 처음 철원이었다가 919년 송악(개성)으로 옮겼습니다. 후고구려의 영토를 그대로 이어받아 후삼국 시대가 본격화됐습니다.

초기 전쟁 — 공산 전투의 대패 (927)

공산 전투의 신숭겸
신숭겸의 충성 (927)

견훤의 신라 침공 (927)

927년 9월, 견훤이 신라 수도 경주를 직접 침공해 경애왕을 자살시키고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견훤은 친고려 성향이었던 신라 왕실에 대한 강한 일격을 가한 것입니다.

공산 전투 (927.9)

왕건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5천 군을 이끌고 출동했지만, 견훤의 군대와 대구 공산(현 팔공산)에서 마주쳐 대패했습니다. 신숭겸·김락 등 고려 명장이 전사했고, 왕건 자신도 위태로웠습니다.

신숭겸의 충성: 신숭겸은 왕건이 포위된 상황에서 자신의 옷을 왕건 것과 바꿔 입고 적군을 유인해 죽음을 자처했습니다. 왕건은 그 덕에 살아남았고, 후에 신숭겸의 가문을 평산 신씨로 사성하며 가문 묘역을 직접 마련해 줬습니다.

공산 전투 후 한동안 후백제가 후삼국 정세를 주도했습니다.

정세 역전 — 고창 전투 (930)

3년 뒤 1930년, 안동(고창)에서 벌어진 고창 전투에서 왕건이 견훤을 크게 격파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정세가 역전됐고, 신라 호족들과 동해안 호족들이 대거 고려에 귀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고려는 점진적으로 우위를 굳혔고, 신라와의 관계도 우호로 변모했습니다. 932년 견훤이 다시 한반도 남부를 휩쓸기도 했지만, 큰 흐름을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통일의 결정타 — 935~936년

경순왕의 항복
신라 경순왕의 자발적 항복 (935)

견훤의 망명 (935.3)

935년 3월, 견훤이 자기 아들들 사이의 후계 다툼에서 장남 신검에게 폐위되어 금산사(전북 김제)에 유폐됐습니다. 견훤은 6월 탈출해 왕건에게 망명했습니다. 왕건은 견훤을 "상보(尚父)"로 우대하며 정중히 받아들였습니다. 적이었던 견훤이 협력자가 된 것입니다.

신라 경순왕의 항복 (935.11)

935년 11월, 신라 경순왕(김부)이 자발적으로 고려에 귀부(歸附 = 항복)했습니다. 견훤의 신라 침공 후 신라는 자력 통치가 어려워졌고, 경순왕은 가족 회의 끝에 평화적 항복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아들 마의태자는 이 결정에 반대해 금강산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왕건은 경순왕을 정성껏 우대했습니다. 자신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신라의 옛 영토를 그대로 보장했습니다. 이는 호족 회유의 모범 사례가 됐습니다.

일리천 전투 (936.9)

1936년 9월, 고려가 후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했습니다. 견훤이 향도(嚮導 = 길잡이) 역할을 했고, 일선군 일리천(현 경북 선산 부근)에서 신검의 후백제군과 대결했습니다.

고려군 8만 7천 vs 후백제군 3만. 결과는 고려의 압도적 승리였습니다. 신검은 항복했고, 후백제는 멸망했습니다. 견훤은 통일 직후 화병으로 숨졌다고 전해집니다.

후삼국 통일 연표

연도사건
900견훤, 후백제 건국 (완산주)
901궁예, 후고구려 건국 (송악)
918.6왕건, 궁예 몰아내고 고려 건국
919왕건, 송악으로 천도
927.9견훤 경주 침공·경애왕 자살 → 공산 전투 (고려 대패, 신숭겸 전사)
930고창 전투 (고려 승리, 정세 역전)
935.3신검이 견훤 폐위·금산사 유폐
935.6견훤 탈출 → 왕건 망명
935.11신라 경순왕 자발 항복 (마의태자 금강산행)
936.9일리천 전투 → 후백제(신검) 멸망 → 통일 완성

후삼국 통일의 의의

발해까지 포용한 통일

왕건은 936년 후삼국 통일을 이뤘을 뿐 아니라, 멸망한 발해(926 거란에 망함) 유민까지 적극 포용했습니다. 발해 세자 대광현이 수만 무리를 이끌고 망명해 오자 왕씨 성(왕계)을 하사하고 우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라 계승이 아니라 "고구려 계승 + 발해 포용"이라는 정통성을 천명한 것입니다.

호족 회유의 정치학

왕건의 통일은 군사적 정복뿐 아니라 호족 회유의 결과였습니다. 혼인 정책(왕비 29명), 사성 정책(왕씨 성 하사), 역분전 지급 등으로 호족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고, 적장이었던 견훤·경순왕도 정중히 대우했습니다.

훈요 10조

왕건은 죽기 직전 후대 왕에게 "훈요 10조"를 남겼습니다. 불교 진흥, 풍수지리, 서경(평양) 중시, 거란 경계 등 고려의 기본 통치 방향이 담긴 유훈이었습니다.

한능검 후삼국 통일 출제 패턴

  1. 건국 시기: 후백제 900(견훤·완산주), 후고구려 901(궁예·송악), 고려 918(왕건).
  2. 주요 전투: 공산 전투(927) → 고창 전투(930) → 일리천 전투(936). 순서·결과 빈출.
  3. 견훤 망명: 935 신검에 의해 폐위 → 고려 망명 → 일리천 향도.
  4. 경순왕 항복: 935.11 자발적 귀부, 마의태자.
  5. 신숭겸: 공산 전투 충성, 평산 신씨 시조.
  6. 발해 포용: 대광현 망명, 왕건의 고구려 계승 의식.

마무리

왕건의 17년은 단순한 군사 통일이 아닌 회유와 포용의 정치학이었습니다. 공산 전투에서 신숭겸의 죽음으로 위기를 넘긴 왕건은, 결국 적장 견훤의 망명을 받아내고 신라의 자발적 항복까지 이끌어내며 평화적 통일을 완성했습니다. 발해 유민까지 포용한 이 통일은 진정한 의미에서 한반도 통합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 학습으로는 왕건의 호족 정책(혼인·사성·역분전), 훈요 10조, 광종의 왕권 강화(노비안검법·과거제)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후삼국 = 견훤(후백제) + 궁예→왕건(고려) + 신라 + 17년 + 936 통일. 이 다섯 마디면 충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 Q. 후삼국이 무엇인가요?

    신라 말기 진성여왕 시기부터 분열된 후 등장한 세 나라 — 신라(경주 일대), 후백제(견훤, 900년 건국, 전라도), 후고구려(궁예, 901년 건국, 강원도·중부)를 말합니다. 후고구려는 918년 왕건이 차지해 고려가 됐습니다.

  • Q. 후삼국 통일 시기는 언제인가요?

    936년 후백제(신검) 멸망으로 통일이 완성됐습니다. 918년 고려 건국부터 17년이 걸린 통일 전쟁이었습니다.

  • Q. 신라는 어떻게 고려에 항복했나요?

    935년 신라 경순왕(김부)이 자발적으로 고려에 항복(귀부)했습니다. 견훤이 927년 경주를 침공해 경애왕을 자살시킨 후 신라의 자력 통치가 어려워졌고, 경순왕은 가족 회의 끝에 평화적 항복을 결정했습니다.

  • Q. 후백제는 어떻게 멸망했나요?

    936년 9월 일리천 전투에서 고려군이 견훤의 아들 신검의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그 전 935년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자 고려에 망명했고, 고려군의 향도 역할을 했습니다. 일리천 전투로 후백제가 멸망하며 후삼국이 통일됐습니다.

  • Q. 공산 전투가 무엇인가요?

    927년 9월, 후백제 견훤이 신라 경주를 침공해 경애왕을 자살시키고 돌아가는 길에, 신라를 구원하러 온 왕건의 고려군과 대구 공산(현 팔공산)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고려가 대패했고, 신숭겸·김락 등 고려 명장이 전사했습니다. 신숭겸은 왕건을 살리기 위해 왕건 옷을 입고 대신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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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시험 경험을 바탕으로 기출노트를 만들고 운영합니다. 이 글은 국사편찬위원회·두산백과 등 공식 자료를 참고해 작성·검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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