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이 지역’에서 있었던 민족 운동으로 옳은 것은?

📚학습 자료 펼쳐보기 — 정답·해설·시대 배경
제70회 한능검 34번 문제 개요
이 문제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0회 심화 과정 34번 문항으로, 일제 강점기의 정치 영역에서 출제되었다. 배점은 3점, 난이도는 어려움 수준이다.
정답과 해설
정답은 1번 — “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가 설립되었다.”이다.
남만주(경학사, 부민단, 신흥무관학교) 2. 연해주(신한촌) 3. 일본 4. 하와이(박용만14) 5. 미국(안창호 10년대) 경학사 = 신민회가 1911년 4월 남만주 삼원보에 세운 자치기구 1911년 서간도에 이주한 이회영, 이상룡 일가 세운 경학사는 서간도 이주민을 위해 농업 등 실업과 교육을 장려하고 장차 군 사훈련을 시키기 위해 만든 결사(結社)조직이었다.. 한편 경학사는 이주민들을 위하여 만주지역에서 최초로 벼농사 를 보급하기도 했다. 1911년 6월 10일(음력 5월 14일) 옥수수 창고에서 감격적인 신 흥강습소의 개교식 망명지사들이 서간도에 온 목적은 항일독립운동과 그 기지를 건설하려는 것이었고 그것과 직결되는 사업이 바로 무관학교 설 립이었다.
시대 배경 — 일제 강점기 (1910년 ~ 1945년)
일제 강점기는 무단 통치(1910년대, 헌병 경찰)·문화 통치(1920년대, 보통 경찰)·민족 말살 통치(1930년대~1945, 황국 신민화)의 3단계로 전개되었다. 3·1 운동(1919)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수립되었고, 1920년대에는 봉오동 전투·청산리 대첩, 의열단·한인애국단 활동, 신간회(1927) 중심의 민족 유일당 운동, 물산 장려 운동·민립 대학 설립 운동 같은 실력 양성 운동이 전개되었다. 1930~40년대에는 한인애국단의 이봉창·윤봉길 의거, 조선의용대·한국광복군의 무장 투쟁이 이어졌고, 국가 총동원법(1938) 이후 인적·물적 수탈이 극심해졌다. 경제적으로는 토지 조사 사업(1912), 산미 증식 계획(1920년대), 병참 기지화 정책, 공출·징용·징병으로 수탈이 확대되었고, 문화적으로는 조선어학회(한글 연구), 신채호·박은식의 민족주의 사학, 백남운의 사회경제 사학이 저항의 축이 되었다.
- 무단·문화·민족 말살 통치의 단계별 특징
- 3·1 운동과 임시정부, 청산리·봉오동 대첩, 신간회
- 의열단·한인애국단·한국광복군·조선의용대의 무장 투쟁
- 토지 조사 사업·산미 증식 계획·국가 총동원법
정치 영역 학습 포인트
정치 영역 문제는 통치 구조(관제·법령), 왕권과 귀족의 관계, 대외 항쟁, 외교 관계, 반란과 개혁을 중심 단서로 삼는다. 시기별 통치 체제의 변화와 주요 인물의 정책을 연결해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